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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출시 및 나이키 연혁

왜 나이키인가?
나이키는 스포츠 마케팅에 있어 가장 많은 케이스로 등장하는 브랜드이며, 브랜드 연구라는 측면에서도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다. 2002년 브랜드 가치는 77.2억 달러(세계 35위)이며 이는 1964년 Phil Knight(사진 1 참조)와 Bill Bowerman(사진 2 참조)이 500달러씩 출자해 1000달러로 시작한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무엇이 나이키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작년 11월, 늦가을에 찾은 나이키 본사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회사 마크를 문신하고 다니는 직원이 있었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로고를 문신한다…, 말이 필요없는 열정, 자부심, 그리고 애사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hil Knight는 세계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범함으로부터의 가치 추구, 예견 능력 등은 ‘어릴 적 운동화를 받았을 때의 소중함’이라는 영감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Phil Knight의 5대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다.

- Just do it.
- 지독해야 한다. 하지만 규칙은 지켜라.
- 반드시 이기려고 해야 한다.
- 올림푸스의 신들을 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
- 결코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마치 종교단체와 같은 카리스마를 연상시키지만, 이러한 명쾌한 컨셉트가 지금의 나이키를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결코 포기하지 마라’라든지 ‘나이키를 신으면 불가능한 것도 할 수 있다’라는 이같은 아포리즘(aphorism)은 ‘나이키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점을 극명히 보여 주고 있다.

Phil은 어렸을 적 꿈을 키워 온 미국 오리건주를 훗날 스포츠의 메카로 만들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는 1990년 포틀랜드(오리건주 북서부에 있는 도시)의 위성도시 비버튼에 The Nike World Campus를 건설함으로써 증명됐다(사진 3 참조). 무엇보다 동문(정문) 입구 거리 이름이 Bowerman Dr.인 것은 특기할 만하다. Phil의 스승이자 동업자인 Bill Bowerman의 이름을 딴 것이다. Bill이 남긴 유명한 말에 의해 나이키의 미션은 완성되었다. “세계의 모든 선수들에게 영감과 혁신을 가져다 주기 위해 나이키는 탄생했다. 육체를 가진 당신이 바로 스포츠맨이다(To bring inspiration and innovation to every athlete in the world. If you have a body, you are an athlete).” 먼 훗날, 나이키가 항상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것임을 예견한 말인 듯 하다.

‘나이키’라는 회사


때마침 내가 나이키를 방문했을 때, 여기저기 30주년 기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단순히 ‘30’이라는 숫자를 통해 내가 다니는 회사와 일종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키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우리는 흔히 ‘역사는 필연적 우연의 연속’이라고 한다. 나이키의 시작을 이야기하기 위해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57년 오리건 주립대에서 중거리 육상선수 Phil Knight와 육상코치 Bill Bowerman의 만남, 즉 Phil의 비즈니스 통찰력과 Bill의 혁신적인 디자인의 만남이 나이키의 출발이다.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관심사는 단 한가지, ‘운동화’였다. 즉, ‘기록 향상을 위해 운동화 산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사업 명제였다. 1962년 Phil의 스탠포드 비즈니스 스쿨 MBA 프로젝트였던 ‘About breaking Germany’s domination of U. S. athletic shoe industry with affordable, hightech exports from Japan’ 에서 비즈니스 모티브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침내 1964년, 일본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의 전신인 Onisuka Tiger Company와의 제휴로부터 본격적인 스포츠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우연히 와플 굽는 틀에 고무합성물을 붓는 식으로 신발 깔창 제조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승리의 여신 ‘니케(Nike)’에서 ‘나이키’라는 미국식 명칭이 탄생하였다는 브랜드·로고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미술 전공 대학원생 Caroline Davison이 개발한 ‘Swoosh’로고는 니케의 날개이자 승리의 상징인 ‘V’를 표현하고 있는데, 개발비용이 단 35달러였다니 이 당시 누가 지금의 가치를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 때부터 ‘Nike’라는 이름과 ‘Swoosh’로고를 가지고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1972년(창립기념일은 9월14일)이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미국의 중장거리 기록 보유자인 Steve Perfontaine이 나이키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첫 번째 나이키 후원 선수였던 셈이다. 나이키는 탄생과 함께 1970년대 ‘조깅’붐으로 호기를 잡았으며, 1974년부터는 조직적으로 육상선수들을 지원하게 된다. 그 후 1978년에 ‘코트의 악동’ 원조인 John McEnroe와 스폰서 계약을 하였고, 1979년에는 스포츠용품 업계 1위에 등극하게 된다. 이 당시 미국 육상 800~1만m 모든 기록 보유자들이 나이키를 신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84년에는 사업영역 확장에 따라 신발에 대한 전문성을 상실하였고 시들어 버린 조깅 붐으로 판매고가 하락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에어로빅 붐’에 의한 리복의 선전은 나이키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초 Michael Jordan의 등장으로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지금까지도 ‘Jordan이 나이키를 키웠는가, 나이키가 Jordan 을 키웠는가’하는 논쟁이 일어날 정도로 양자 간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1984년에 ‘에어조던’이 론칭되었는데, 론칭 캠페인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NBA에서는 컬러 농구화의 착용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키는 Jordan에게 검정색 신발을 신게 해 게임당 1000달러의 벌금을 지불하면서 프로모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때부터 나이키는 전략 종목을 ‘농구’로 선정하여 수많은 농구 스타들을 장악하게 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미국 대표팀인 드림팀의 대부분이 나이키 후원 농구 스타들이었는데, 시상식에서 공식 의류 공급업체인 아디다스의 마크를 가리기 위해 성조기로 망토처럼 몸을 감쌌다는 뒷 얘기가 있다. 이는 후원 선수들의 나이키에 대한 로열티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으로서, 스타들의 프로다운 면모와 나이키의 선수를 통한 스폰서십 마케팅의 치밀한 전략을 엿볼 수 있다.

Just do it’ 캠페인은 1988년에 시작하였는데(1998년 ‘I can’ 캠페인 이전까지), 이는 여성을 겨냥해 운동을 해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이 캠페인이 나이키에게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다. 1993~1994년, 미국의 일시적 경기하락을 계기로 나이키는 ‘스포츠화’ 회사에서 ‘스포츠’ 회사로 변신하게 된다. 즉, 스포츠 관중을 확대시키기 위한 광고 및 스폰서 활동에 주력하였다. 이로써 1995년 매출 48억 달러가 1997년 상반기 매출 92억 달러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포츠 회사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시장점유율 면에서도 미국 스포츠화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생겨난 유명한 말이 ‘신발 가게는 망해도 나이키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다.

1997년에는 마케팅에 56억 달러를 지출하였는데, 이 중 70%에 가까운 비용이 특정 선수들에 대한 개별 후원이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1996-1997 시즌 NBA 올스타 시상식에서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수상자가 나이키 계약자였을 정도로 나이키는 스타 마케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하지만 1998년부터 나이키는 빅 스포츠 스타 중심의 광고전략에서 탈피, 무명 선수와 비인기 종목 선수를 활용하는 ‘I can’ 캠페인으로 전환한다. 더불어 1998 년 ‘What are you getting ready for?’ 캠페인으로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강조하여, 그 동안 부정적인 요소로 인식되었던 ‘Just do it’의 지나친 상업성을 희석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러던 나이키의 이미지에 위기가 닥친 것은 1997년 10월 하순, 미국 민간 비영리 인권기구인 ‘Global Exchange’가 나이키의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13세 이하의 어린이가 시간당 10센트 이하의 임금을 받으며, 하루 17시간의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개발 도상국에서 저임금과 노동자에 대한 억압, 어린이 노동력 착취 등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비난하는 시위가 확산되어 갔다. 나이키는 재빨리 의류산업조합에 가입하며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이후 30주년 행사 특별 프로그램으로 ‘Children Aid’와 운동화 밑창 고무 재활용의 환경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나가고 있다. 사회사업 프로그램인 1993년 Nike Environment Action Team이나 1994년 P. L. A. Y. 캠페인(Participate in the Lines of America’s Youth, 신고 버려진 신 100만족 이상을 회수 처리하여 경기장 바닥을 재정비하는 데 사용) 등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위한 위기 관리인 동시에 대의(大 義) 마케팅(cause-related marketing)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회사의 인프라 - 환경과 시설
약 2만 5000평의 자연 속에 호수를 끼고 있는 환경. 공장은 없고, 사무직과 연구직만 2만 3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캠퍼스는 전면 금연구역이다. 하얀색 건물들은 종교단체의 사원, 혹은 성지의 느낌마저 준다. 사무실 주변은 물론, 레스토랑 심지어 화장실에도 스포츠가 숨쉬고 있다. 나이키는 스포츠의 모든 것이며, 스포츠의 메카라는 것을 어디서나 느낄 수 있다. 레스토랑은 Knight회장이 약속 없는 날,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해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각 건물들에게는 나이키 올림푸스의 신들인 John McEnroe와 Michael Jordan 등의 이름을 헌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회랑을 따라 208명 운동선수들의 얼굴 조각 상들이 양쪽으로 전시되어 있다(사진 6 참조). 이들은 물론 나이키와 깊은 관계를 가지며 미국 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한 스타들이다.

회랑을 지나다 보면 바닥에 금속판이 하나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사진 7 참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나이키 로고와 함께 ‘There is no finish line - Just open it’ 이라는 문구가 있고, 왼편에는 ‘a story of Nike present’, 오른편에는 ‘a picture of Nike past’라고 씌어 있다.

1992년 창립 20주년 때의 모습을 통해 20년 후인 2012년 나이키의 자화상을 되새겨 보는 자리인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피트니스 센터(Bo Jackson Sports and Fitness Center)였다 (사진 8 참조). 스포츠가 신격화되는 곳에서는 직원들도 육체를 숭배하기 마련이다. 집중이 되지 않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냥 운동을 한다. 직원 가족도 이용이 가능하며 정규 강습과정도 늘 준비되어 있다. 땀을 흘려야 한다는 규정이 고용 계약에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이다. 하지만 직원 채용 시 체력 테스트까지는 없다니, ‘운동치’인 사람도 입사는 가능한가 보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다른 문제일 테니까. 피트니스 센터 내에 있는 사인보드는 대부분의 스포츠 스타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장소로 유명하다. 웬만한 미국의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사인은 물론, 박찬호나 한국에서 방문한 운동 선수들의 서명도 간간이 눈에 띈다.

피트니스 센터 뒷편의 그라운드에는 나이키 깃발과 함께 오륜기, 차기 올림픽 개최국(그리스/이태리)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올림픽 후원사도 아닌 나이키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나이키는 ‘스포츠의 메카’이며 ‘스포츠=나이키’라는 자부심의 발로인 것 같다.

그 밖에 대학교 내 ‘학생회관’ 같은 곳인 ‘Joan Benoit-Samuelson Center’와 근무시간 중 직원 자녀(생후 6주~6세) 100여 명을 보호해 주는 탁아시설인 ‘Joe Paterno Child Development Center’, 그리고 학생시절 Phil의 라이벌이었으나 나중에 나이키의 첫번째 정직원이 된 Jeff Johnson을 기념하는 조깅코스인 ‘Jeff Johnson Running Trails’가 주목할 만한 시설들이다.

‘나이키’라는 브랜드
‘나이키’라는 브랜드의 특징은 한마디로, 일관성(consistency)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Swoosh’로고와 ‘Just do it’이라는 캠페인 슬로건이 그러하다. ‘좀 더 나은 육상화를 만들 수 없을까?’에서 출발한 나이키의 컨셉트는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였다. 로고의 변천사를 보면, 30년 동안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 캐릭터를 철저하게 유지하고 강화 시켜온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과 ‘Revolution’과 ‘Just do it’이라는 광고 전략의 일관적인 메시지에서도 우리는 일관성을 느낄 수 있다. 나이키 광고 전략의 핵심이자 그 탁월성은 ‘광고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파는 것이다’라는 광고의 원론 그 자체이다.

브랜드 메시지는 ‘최고의 경기력(performance)을 발휘하기 위한 최고의 제품’이며, 혁신적인 제품과 각 스포츠 카테고리의 대표적인 선수를 연결한다. 특히, 나이키는 단순히 유명 스포츠 스타만을 이용하지 않는다. 나이키 브랜드를 가장 잘 표현하고 대표할 수 있는 스타를 선정하는 것이다. 각 부분에서 최고의 선수들이고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기와 싸우는 선수들이다. 이들에게는 오직 경기력 향상만이 관심사일 뿐이다. 그래서 진지하게 자신의 운동능력 향상을 위해 열중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며, ‘나이키는 스포츠를 광고한다’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수를 통한 엔도스먼트(endorsemen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최고의 스타=나이키’라는 연상을 끌어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별적인 스포츠 카테고리에서 선도 브랜드의 위치를 확립, 결국 전체적으로 ‘스포츠=나이키’라는 등식을 확립하는 것이 나이키의 전체적인 브랜드 전략이다.

Phil Knight는 “나이키의 스포츠 마케팅은 전문 스포츠인을 발굴, 육성, 관리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제품수요를 창출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끔은 다소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선수들도 활용한다. ‘테니스계의 악동’인 John McEnroe나 ‘코트의 악동’인 Charlse Barkley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부정적인 기업들도 많지만, 스포츠의 속성 중 하나인 흥미거리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들은 성적은 최고이며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이다. 애틀란타 거리 광고물의 미국 여자농구의 간판스타 Lisa Leslie의 “당신은 은메달을 딴 것이 아니라 금메달을 놓친 것이다(You don’t win silver. You lose gold).”나, 미국의 남자 테니스 스타 Andre Agassi의 “이기러 온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관광객일 뿐이다(If you’re not here to win, you’re a tourist).”는 모두 ‘오직 승리만이 최고’라는 컨셉트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나이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규칙을 지키며 도전의식을 가지고, 승리할 때까지 도전하는 승화된 나이키의 기업 컨셉트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이키를 만나고 나서…
나이키는 창의성과 앞선 기술, 스포츠 스타의 육성·자산화로 성공한 브랜드이다. 제일기획은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로 승부를 걸고, 인재 육성에 최선을 다한다. 나이키가 스타를 나이키의 자산으로 만들었다면, 제일기획은 인재를 스타로 만든다. ‘인재가 제일이다’라는 표현은, 그래서 제일기획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著)’를 보면, 기원전 5세기 중엽 고대 로마에서 선진 그리스 폴리스에 사찰단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로마는 아테네를 모방하지 않았다. 강대한 아테네도 항상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스파르타조차 모방하지도 않았다. 쇠퇴기에 접어든 나라를 찾아가 거기에 나타난 결함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절정기에 있는 나라를 시찰하고도 그 나라를 흉내내지 않는 것은 보통 재주가 아니다. 그리스를 시찰한 세 명의 원로원 의원들은 그 접촉을 통해 모방이 아닌 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로마가 그리스를 흉내내지 않았다는 것이 곧 그리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방하지 않았다는 것도 결국 영향을 받은 게 되지 않을까? 이것이 진정한 ‘벤치마킹(benchmarking)’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나는 단순히 앞선 기업의 전략과 인프라를 흉내내는 것만이 선진 기업을 탐방한 후 배울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는 일과 걸어 온 길은 다르지만, 글로벌 기업 나이키로부터 느낀 점(직접 보거나 만지지는 않았지만)이 분명하게 있다. 바로 ‘꿈’과 ‘열정’이다. 도전할 가치가 있는 높은 꿈, 그리고 재능보다는 열정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출처 -  www.fimkorea.co.kr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4&dirId=40401&docId=3474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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